인공지능은 주어진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분류하는 역할을 벗어나서 이제는 스스로 학습하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이나 음악까지 만드는 생성형, 범용 AI로 진화하였다. 그동안 스타일을 암호화하고 전송하는 기술은 오랫동안 시각 기반 인공지능의 과제였지만 이제는 이미지 생성 시스템을 통하여 현실화하였으며, 인간의 창작으로서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제 AI는 단순히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특정 스타일을 모방하고 텍스트도 삽입한다. 이미 창작자들은 자신의 창작과정에 AI를 도입하고 있으며 기업도 마케팅과 콘텐츠 제작에 활용하고 있어서 표현방식의 모방과 작품의 모방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표현기법과 스타일은 창작자의 독창성과 개성을 반영하는 예술의 중요한 요소이며,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창작자의 지적 활동에 따른 결과물이다. 하지만 표현기법은 아이디어로 규정되어 저작권법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AI 기술로 표현기법을 모방하게 되면 창작자에게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 손실을 끼치고 창작물의 가치를 훼손하고 창작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예술가가 타인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행위는 허용되지만, AI가 그것을 모방하는 문제는 다른 차원을 형성한다. 전통적으로 저작권법은 예술적 표현방식이나 아이디어가 아닌 구체적인 표현만 보호한다. 지나친 저작권의 보호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스타일 자체는 저작권으로 보호되지 않지만, AI가 학습 과정에서 저작권이 있는 작품의 스타일을 사용하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 최근 들어 AI 저작권 논쟁에서 혼란스러운 사례 중 하나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챗GPT를 통한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생성이다. AI가 특정 캐릭터나 장면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저작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작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스타일 모방이라도 구체적 장면과 구도로 재현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AI관련 규정은 저작권의 행사와 집행을 위해서 AI 개발자에게 학습데이터에 대하여 충분하고 상세한 요약을 공개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도입되지 않고 있다.
인간의 행위를 통한 창작물은 철학과 정신의 산물이며, 그것을 AI가 무단 모방하는 것은 창작자의 의도를 훼손하는 것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브리 스타일로 생성된 창작물을 ‘생명 자체에 대한 모욕’이며 진정한 창작자의 고통을 간과한다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은 산업의 동력이며,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다. 창작자의 권리를 무시한 데이터 활용은 창작 환경을 위축시키지만, 저작권의 강화는 기술의 진보를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활용과 저작권 사이에서 균형 있는 가치와 권리의 분배가 필요하다. 저작물의 AI 학습데이터 이용에 따른 저작권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 방법으로 이용행위에 대해 정해진 요율을 적용하는 방법과 저작물이 AI 결과물 생성에 관여한 비율을 산정해 저작권자에게 이익을 배분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인공지능과 공존하고 있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은 아직 미비하다. 지브리 스타일은 단순히 법적 경계를 허무는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에 대한 존중, 예의, 인간의 손에서 탄생하는 감성과 통찰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다. 그것은 규범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기술과 창작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결코 외면하면 안 될 과제다. 지브리 스타일의 미래는 기술의 진보를 존중하면서도 인간의 창작성과 권리를 보호하는 법적, 윤리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에 달려있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