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자율적인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시스템이다. 시장은 자원과 재화의 효율적인 생산, 분배, 소비를 목표로 하지만, 공공재 문제, 외부효과, 독점, 정보격차로 실패할 수 있다. 이때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여 공공재 제공, 외부효과 조정, 독점 규제, 정보 조정 등을 통해 시장 실패를 보완하며 사회적 효율성을 개선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이 과도하면 오히려 경기가 둔화하고 효율성이 저하된다. 자본주의 경제 이론을 확립한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조정하고 통제한다고 믿었지만, 수정자본주의 학자인 케인스(Keynes)는 완전경쟁시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신자유주의 학자인 하이에크(Hayek)는 애덤 스미스의 입장을 수용하여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시장을 왜곡하고 위축시키기에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케인스의 계획은 1930년대 세계 경제 공황을 극복하고 하이에크의 계획은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경기침체를 극복하였지만, 둘 다 장기적인 경제정책으로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시장을 위축시키며 시장의 자율성은 독점과 양극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는 시장을 중심으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제안하여 우리 시대 경제정책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도 시장 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정부가 개입하는 상호 보완적 경제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시장 개방과 자유화 정책을 강화하며 시카고학파의 경제 이론을 도입하여 단기간에 회복하였지만,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과 함께 시장 자율화와 정부 개입 사이의 불균형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적절하지 못한 정부의 입은 오히려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시장 실패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양곡관리법 논의는 시장과 정부 사이의 불균형이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양곡관리법은 양곡의 효율적인 수급 관리를 통하여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경제 안정과 식량안보를 추구하는 제도다. 특히 쌀은 식량주권의 근간이며, 농업인구와 농지가 감소하고 쌀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의 쌀 가격은 생산비에 비해 낮으며 불안정하다. 따라서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면 가격 하락을 막고 농민들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다. 또한 초과 생산분을 시장에서 격리하여 무분별한 쌀 증산을 방지하고 타 작물로의 재배 전환도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장기적으로 쌀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쌀 매입이 보장되면 농가의 쌀 생산을 유인하여 시장 기능의 왜곡과 생산 과잉을 가져온다. 과잉 생산구조의 고착은 자급률이 부족한 작물 재배로의 전환을 방해하며 비효율적 생산을 지속하여 쌀 농업의 자생력을 약화한다. 또한 쌀 매입을 위한 재정지출은 농정 사업이나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할 재원을 잠식하여 국가의 성장동력을 약화한다. 쌀 시장에 대한 과도한 정부 개입은 국제적인 통상 마찰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국가의 농업 보조금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정부의 의무적 매입을 통한 쌀 가격 안정은 시장을 왜곡하는 보조금으로 간주되어, 국제사회로부터 통상 압력이나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이제 식습관과 생활방식의 변화로 쌀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며 정부의 개입은 실제로 쌀 자급의 실현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매년 초과생산 물량을 수매하여 격리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지만 쌀 공급과잉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먹는 쌀 품종은 국제 시장에서 중국, 일본, 한국만이 소비하기에 가격 변동성이 크다. 따라서 양곡관리법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보완하는 것은 물가 안정, 농업과 농가 지원의 차원을 넘어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경제의 이념은 ‘홍익인간’이며 시장이나 정부나 경제주체인 국민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 정부는 규칙과 제도를 설립하고 공공재를 생산하며 조세 제도, 사회 보장 제도 등을 통해 분배의 불균형을 개선하고 시장은 수요, 공급의 자유로운 교환과 소통을 실현하는 상호 보완적 기능이 정착되어야 한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