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며,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에 적극적인 보호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세계 인권선언에 따르면 의식주의 권리와 문화생활의 권리가 사회권에 포함되어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사회권은 행복추구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기초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35조에는 환경권과 주거권이 명시되어 있다. 최근에는 사회권 의식의 확대와 함께 주거권 논의가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 국민의 생존권과 사회권의 관점에서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권으로서 주거권은 하위 권리인 재산권과 소유권에 종속되어 버렸다. 복지사회에서 재산권과 소유권 보호보다 더 시급한 것이 주거권 보호이다. 하지만 주거권에 대한 법적 근거는 있어도 현실적으로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제도나 서비스가 부족하다. 정부는 현실적으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주거 기본법을 제정하기 이전에 먼저 강제퇴거 금지와 주거환경 개선을 입법화하여 주거 빈민의 인권을 회복시켜야 한다. 인권의 기본 형태들은 상호 규정적이며, 상호보완적이다. 예를 들어 자유권과 평등권, 그리고 참여권 중 하나가 손상될 때 기본권 전체가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주거권이 손상될 때, 사회권 전체가 성립될 수 없다.
우리의 주거문화는 삶의 질을 위한 주거환경보다 재테크를 위한 주택 물량 확보에 편중되어 왔다. 수도권으로의 비정상적인 인구 집중은 정부의 주거정책을 공공환경으로서의 주거 공간 확보보다는 사적 소유로서의 주택공급 확대에만 치중하도록 하였다. 주택 물량 확보 정책과 건설업체들의 자본 추구가 맞물려서 대규모 주택건설 사업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서울의 인구 분산을 위하여 강북 인구를 억제하고 택지개발을 금지한 대신, 강남지역에는 세금 혜택과 함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교육, 문화시설을 집중시켰다. 1979년 ‘남서울 개발 계획안’이 발표되자 강북시민의 강남 이동은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강남개발 정책 정책은 강북의 인구 밀집을 어느 정도 완화하였지만, 계층, 지역, 그리고 소득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주택을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여기는 주거 의식을 부추겨서 부동산 투기 열풍을 조장하였다.
우리는 주거권의 실현을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무상으로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방법이며, 다음으로 현재의 주거생활을 보장하는 방법이고, 마지막은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이다. 첫째 방법은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는 현실화하기 어렵지만 두 번째 방법은 주거권을 인정하는 정부의 정책과 입법화를 통하여 실현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문화적, 환경친화적 관점에서 아파트 중심의 주거 형태로 획일화되는 주택정책을 다원화할 수 있다. 주거급여, 공공임대주택, 주거복지서비스의 정착은 주거권 정책의 긍정적 결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주거 안정 특별법이 시행되어, 전세 사기 피해자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주거 안정과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남아 있는 과제는 주거권 침해의 현실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완비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저출산과 청년 빈곤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신혼부부와 청년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개선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저소득층과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는 간과되고 있다. 주거 취약 계층에게 주거권은 생존권이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주거의 안전성에 대한 규제와 지원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축주택에 제한되어 수재와 화재를 통한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주거권은 모든 국민이 적정한 주택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기본권이다. 임대차 관련 제도를 보완하여 거주 안정성을 확보하고 비주택 거주자들에 대한 대책, 노숙인 등에 대한 대책, 재개발로 인한 강제퇴거 등에 대한 강력한 규제 등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권 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