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형상과 시선 과감히 제거…”내면에서 울리는 양심의 시선”
“무엇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기분 좋은 힘듦”
김미경 작가의 첫 개인전이 10월 28일부터 11월 6일까지 광주 동구 아크갤러리에서 열리며, 많은 관람객의 관심과 사랑 속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이어간 김 작가는, 세 아이의 엄마로 바쁜 일상을 살아오다 ‘두돌비’와 ‘수 드로잉’ 모임에서 드로잉과 크로키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작업해보자’는 용기를 얻어 이번 첫 개인전을 준비하게 됐다.
‘OVERLOOK(가슴으로 보는 시선)’이란 주제의 이번 전시에서는, 장지에 수간채색 기법을 활용해 ‘덩어리’, ‘묵과된 응시’, ‘격류’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가슴과 다리의 형상을 담은 작품들은, 묵직한 덩어리감 속에 절제된 색을 입고 관람객과 마주선 그 순간 강렬한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며 관람객의 시선을 머물게 했다.
11월 6일, “우리는 얼마나 자주 타인을, 그리고 자신을 간과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 묵과의 순간, 우리의 가슴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요?”라고 말하는 김 작가를 만나 그동안의 여정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용기 있는 도전
Q. 이번 전시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기간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계속 이 길을 가야 할까?’ 하는 고민이 깊어지던 때가 있었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게 되었는데, 그 공백을 손으로 하는 작은 작업들로 채우곤 했다. 그러다 크로키 수업을 나가면서 작업에 대한 열망이 다시 끓어올랐다. 선을 긋는 그 순간, ‘아, 내가 살아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해 12월 광주문화재단에서 신진작가로 선정돼 지원을 받게 되었고, 그 후 1년 동안 꾸준히 작업을 준비하며 올해 첫 전시를 열 수 있었다.”
Q. 용기를 내 첫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였는지
“대학을 졸업하고 20년 동안 제대로 된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예술에 대한 갈망이 늘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작업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개인전을 결심하는 데 가장 큰 망설임이 됐다. 그리고 아이가 셋이다 보니 경제적인 부분도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Q. 세아이의 엄마로 살아오시면서, 엄마의 삶과 작가의 꿈이라는 두 세계를 어떻게 조율해 오셨는지
“조선대에서 순수미술 조소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미술교육을 공부했다. 이후 문화예술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중학교에서도 수업을 했다. 지역사회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리기, 만들기 등 다양한 예술수업을 진행해왔고, 이런 문화예술교육 활동이 오히려 내가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매일 일하지 않아도 되고, 때로는 내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면서 작업실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는 프리랜서 형태가 지금의 나에게 잘 맞는 것 같다.
개인전을 열기 전까지는 아이들을 자주 안아줬다. 우리 아이들은 화평(15세), 온유(12세), 야호(9세)로 모두 세 살 터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의 시간이 작업하기 좋은 시간이었고, 세 아이를 키우며 겪은 여러 역경과 고충은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성장시키는 힘이 되었다. 삶의 내공도 그 과정에서 쌓인 것 같다. 아이들 아빠가 옆에서 많은 도움을 준 것도 큰 힘이 됐다.”
작품이야기
Q. 전시 제목 ‘Overlook 가슴으로 보는 시선’이 매우 철학적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Overlook은 사전적으로 ‘간과하다, 묵과하다’라는 뜻이 있다. 동시에 ‘넘어보는 시선’, 즉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관계를 향한 시선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 역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불편한 진실 앞에서는 외면하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내 시선을 피하고 묵인하는 태도가 생길 때, 내면에서 울리는 양심의 시선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작품에서는 얼굴의 형상과 시선을 과감히 제거했다. 몸으로 느끼는 시선, 즉 가슴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런 감각이 드러나도록 드로잉과 작업 전체를 이끌어갔다.”
Q. 그렇다면 작업의 소재는
“작업의 소재는 일상 속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품 속 ‘살아가는 사람’은 내가 틀 안에 고정해 놓은 소심한 시선을 가장한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형상이다.
간과하고 묵과하는 나와 또 다른 이, 사회의 통념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소심한 시선과 가슴의 시선이 맞닿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 온 관계들, 타인의 내면, 그리고 때로는 나 자신까지도 ‘간과된 존재’로 다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Q. 전시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으셨을 텐테, 선정 기준과 준비 과정은 어떠했는지
“원래 작업실에서는 평면 작업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제가 조각을 전공하다 보니, 평면에서 표현하고 싶은 색감뿐 아니라 조형적인 입체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평면 작업들을 전시장에 꽤 많이 가져왔었는데, 여러 방향으로 보여주기보다는 하나의 흐름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Overlook이라는 주제와 맞닿은 작품들로만 구성했다. 입체든 평면이든 결국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작업들만 남겼다.”
Q. 작품에 장지에 수간채색 기법을 선택한 이유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 여러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고민을 많이 했다. 그중 분채를 사용한 동양화 작품들이 주는 묵직한 색감과 차분한 분위기가 깊게 와 닿았다. ‘이 재료를 내 작업에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양화 채색 기법인 분채 수간채색을 선택했다. 흙으로 형태를 먼저 만들고, 그 형태를 석고로 떠낸 뒤, 석고 틀 안에 장지를 찍어내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그 장지 위에 수간채색을 입혀 작업을 완성했다.”
Q. 작품에서 수간채색을 사용하고, 평면과 입체에서 색을 다르게 표현하신 이유와 고민을 말씀해 주신다면
“분채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더 깊이 알아가고 싶은 재료다. 평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드로잉적인 작업도 앞으로 좀 더 이어갈 생각이다. 원래 수간채색은 민화나 동양화 쪽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법인데, 나는 인체의 조형성을 기반으로 작업하다 보니, 그런 조형적인 형태에 동양화 채색을 적용하는 것이 작가분들도 조금은 새롭다고 하셨다.
또 평면에서의 색 선택과 부조 같은 입체 작업에서의 색 선택은 분명 다르다. 평면 작업에서는 비교적 제한적이고 억누르는 색감을 사용했다. 어두운 계열 안에서 강한 색을 아주 살짝 드러내는 방식이었다면, 부조 형태의 조형작품은 돌출된 형태에 다양한 색을 입힐 수도 있음에도, 나는 덩어리 자체를 더 강조하기 위해 여러 색을 쓰지 않고 단색으로 표현했다.”
Q. 덩어리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살아가는 사람의 덩어리진 몸짓은 특정 개별 인물을 묘사하기보다는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형상을 담아냈다. 그들은 마치 틀안에 고정된 듯 보이지만, 외면과 내면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선을 멈추고 그 안에 담긴 미묘한 감정을 응시한다.
적극적인 시선과 외면하는 시선 사이의 소극적인 시선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내면적 욕망이 깃들어 있고, 때로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의 흔적이 숨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선은 곧 작업 속 인물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몸의 제스처를 단순한 덩어리로 응고시킨다. 내가 그리는 인물들은 역동적인 생명력보다는 정지된 응시 속에 놓여 있다. 이는 응축된 감정을 지향하는 나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 인간이 바라보는 시선, 아니면 가슴에서 내비치는 그런 시선까지도 없앴을 때 우리를 바라보는 그 너머의 시선, 그런 시선들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내 작업을 통해 표현될 것 같다.”
예술과 삶의 경계
Q.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며 작업을 이어온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로 사는 일은 늘 바쁘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해결해야 할 것도 많다. 그 속에서 작업을 병행한다는 건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바쁨이 오히려 나를 더 열정적으로 살게 만들었다. 그 속에서 작업의 에너지도 생겼다.”
Q. 아이들은 엄마의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아이들 학교 뒤편에 작업실을 얻어놨는데, 학교가 끝나면 딸도 와서 자기 작업을 하고 간다. 일상적으로 엄마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까 ‘우리 엄마는 늘 뭔가를 하는 사람’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아이들이 ‘엄마, 이건 어떤 작품이야?’ 하고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평가를 하기도 한다. 색이나 형태에 대해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도 있다. 아직 아이들에게 작품의 개념을 자세히 설명해 주진 않지만, 내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늘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Q. 전시 기간 동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첫날에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 주셨고, 덕분에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채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조용한 전시관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은사님 사모님께서 보내주신 긴 문자를 받았다. 결혼할 때부터 제 삶을 지켜봐 주신 분이라 그 글을 읽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이 건드려졌다.
그동안 눌러두었던 감정이 갑자기 봇물처럼 터져 한참을 울었다. 전시를 준비하며 쌓였던 긴장이 풀린 건지, 아니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 건지, 그 순간이 이번 전시의 가장 강렬한 에피소드로 남는다.”
앞으로의 작품 세계
Q. 앞으로의 작업 방향이나, 꼭 해보고 싶은 작품세계는
“전시장에 가져왔지만 최종적으로 걸지 못한 작품들이 꽤 있었다. 그 작업들은 조형적인 요소가 강한, 중간 단계의 비구상 작품들이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더 나아간 비구상 작업들로 통일성을 맞추기 위해 제외했다. 앞으로는 조형적인 형태 속에서 비구상성이 더 집중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소심한 덩어리’라고 해서 가슴의 형상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을 드로잉한 작업이 있다. 그 작품은 재료적인 실험을 더해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Q. 전시를 마치고 나면 개인적인 만족도는 어떤가요
“물론 관객들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제가 느낀 것을 보는 분들도 그대로 느끼고 공감해 주는 것, 그러니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만족인 것 같다.
제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온전히 드러나고, 그것을 작가분들과 관객들이 마주하는 그 순간이 가장 뿌듯하다.”
Q.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예술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마디로 표현해 주신다면
“저에게 예술 작업은 ‘내가 살아지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나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기분 좋은 힘듦이다.”
20년 동안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김미경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작품으로 꺼내어 세상과 마주했다.
그녀가 말하는 ‘기분 좋은 힘듦’은 단순히 창작의 과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래 묻어두었던 자신을 다시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담담하지만 깊다.
“자기 삶에 충실하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엄마처럼…”
작가의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허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