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나라는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였다. 하지만 오래 사는 것만이 행복이 아니며 인간답게 살지 못한다면 초고령화는 오히려 불행일 수 있다. 초고령화는 노후의 삶에 대한 사회적 성찰과 대응을 요구하며 ‘웰다잉(well dying)’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저출산, 고령사회기본법’을 비롯해 연금, 고용, 장기 요양, 보건복지 제도를 통하여 초고령 시대가 준비되고 있지만,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를 위한 지원체계는 여전히 부족하다. 죽음이 임박하여 삶을 정리하고, 자신과의 이별, 가족과의 이별,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다.
인간의 죽음은 사건(death)이라기보다 과정(dying)이다. 태어나는 순간 노화가 시작되며 그것의 결말이 죽음이다.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으며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죽음이 누구에게나 예외 없는 운명임을 알지만, 그것과 마주할 때 비로소 현실로 경험하기에 ‘웰빙(well being)’을 이야기하면서, ‘웰다잉(well dying)’에는 침묵한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죽음의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도 죽음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터미널 케어(terminal care)’와 ’호스피스(hospice)’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정책적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터미널 케어(Terminal Care)’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완화적 돌봄이다. 그것의 목표는 치료적 연명보다 환자의 편안함과 삶의 질을 최우선 추구하는 것이다. 한편 ‘호스피스(hospice)’는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안정시키는 행위다. 터미널 케어가 신체적, 의료적 개입에 집중한다면, 호스피스는 심리적 돌봄까지 확장된 개념이다.
‘터미널 케어’는 단순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을 정리하고 스스로 준비하는 능동적 과정이다. 그것은 삶의 마무리를 스스로 계획하고 준비함으로써 자신과 가족의 부담을 줄이고, 인간다운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Kübler Ross)는 ’죽음과 죽어감‘에서 죽음을 끝이 아니라 자신과 대면하는 과정으로 설명하며 죽음에 대한 사회의 구조적 침묵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스는 말기 환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죽음을 선고받은 후부터 맞이하는 과정까지 겪는 감정의 변화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로스에 따르면, 죽음을 맞이하면서 겪는 심리적 변화 과정은 부정(Denial),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의 다섯 단계로 나누어진다. 누구나 죽음이 임박했을 때, 현실을 부정하고 싶고, 그 현실이 화가 나고 분노를 삭일 수 없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타협하고 수용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로스는 이 단계를 단순한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죽음을 앞둔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서의 움직임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각 단계는 순차적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개인에 따라 순서가 뒤섞이거나 반복되고 생략된다. 어떤 사람은 부정을 오래 붙잡고, 어떤 사람은 분노를 건너뛰며, 어떤 사람은 수용에 이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터미널 케어의 기초가 되는 죽음을 맞이하는 다섯 단계는 임종의 과정을 다루지만, 또한 현재의 삶을 더 진실하게 마주하도록 인도한다. 죽음은 삶의 거울이기에 죽음을 통해 삶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의 완성이다. 초고령화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웰빙(well being)이 웰에이징(well aging)을 넘어 웰다잉(well dying)으로 이어져야 한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