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것을 넘어, 삶을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의미와 가치를 지닙니다. 저는 3년째 청주시 문해교육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서, 문해교육 현장에서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깨닫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육은 매우 빠르고 경쟁적으로 흘러갑니다. 아이들은 수학 공식과 외국어를 쉴 새 없이 배우지만, 정작 우리말과 글의 가치, 그리고 문해력의 본질에 대해 깊이 돌아볼 여유는 부족한 듯 합니다. 반면, 80대, 90대 어르신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글을 배워가는 모습을 보면, 교육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그들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떨림과 설렘,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단순한 학습이 아닌 인생의 깊은 여정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배우고, 직업능력을 향상하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교육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움이어야 합니다. UNESCO 들로르 보고서에서 제시한 ‘알기 위한 학습’, ‘행동하기 위한 학습’, ‘함께 살기 위한 학습’, ‘존재하기 위한 학습’이라는 교육의 네 가지 기둥은 우리 문해교육의 방향과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글자를 배우는 것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문해교육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초석이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교육입니다.
얼마 전 청주시평생학습관에서 초등 학력 인정 문해교육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힐링 인문학데이’를 운영했습니다. ‘글자 넘어의 삶, 나를 만나는 시간’이라는 인문학 강연과 ‘같이 걷고 웃고, 나누는 우리’라는 힐링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학습자들이 글자를 배우는 데서 오는 부담과 한을 해소하고 삶의 의미와 진짜 목적을 되새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30년간 문해교육을 해오신 강사님께서 “문해교육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우는 교육”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에 깊이 공감하며 문해교육이 단순한 글자 교육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문해교육은 글자를 아는 것을 넘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입니다. 과거 여자라는 이유로, 장녀라는 책임으로 교육의 기회를 잃었던 세대에게 문해는 새로운 삶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이 교육을 통해 어르신들은 자신의 삶과 경험을 세상과 나누며, 자존감을 회복하고 가족과 사회에 기여하는 주체로 서게 됩니다.
저는 충북인재평생교육진흥원과 함께 어르신들과 그림책 공모전을 준비하며, 배움이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마음과 삶을 연결하는 과정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르신들은 글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속에 담긴 희생과 인내, 사랑과 삶의 무게를 전합니다. 그 과정은 우리 모두가 교육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문해교육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배우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고, 배움의 과정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학벌이나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선배님들이신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지원을 통해 진정한 교육 복지를 실현해야 할 때입니다.
문해교육이야말로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한 변화를 이끄는 밑거름임을 믿습니다. 글자에 집착하기보다 글자를 통해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함께 배우는 교육,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앞으로도 문해교육이 지식 전달을 넘어, 누구나 배우고 삶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교육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합니다.
지종숙 기자